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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리주의를 넘어 십자가의 사랑으로, 김성수 목사
- URL: https://actnow.or.kr/beyond-triumphalism-through-the-love-of-the-cross/
- Published: 2026-09-29T11:01:43.000Z
- Updated: 2026-10-01T03:23:45.000Z
- Author: 김성수

### 한국교회의 자기성찰과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

> 한국 목회자들과 함께 나누는 고백과 소망

> *"사랑은 경건할 뿐 아니라, 내가 확신하는 바로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사랑이다."* — 월터 윙크

## 1\. 문제의식의 출발: 진리를 말하는 방식에 대한 물음

2008년 풀러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당시, 총장이었던 리처드 마우 교수의 책 『무례한 기독교』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은 오늘날 현대 기독교 안에 자리 잡은 과격한 십자군식 승리주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리스도인이 공적인 영역에 어떤 태도로 참여해야 하는지, 그리고 진리를 주장한다는 명분 아래 얼마나 독단적이고 과격한 모습으로 세상 앞에 서 왔는지를 성찰하게 해 주었다. 결국 그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분명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말하되, 그 진리를 말하는 방식까지도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룬 책들은 이미 많고, 지금도 계속 쓰이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책의 내용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지금도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통해 전진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몸부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회를 앞에서 이끌고, 뒤에서 받쳐 주고, 위에서 끌어올리고, 밑에서 떠받치며 교회로서의 본질과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애쓰는 수많은 목회자들의 수고가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의 창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 모든 수고를 단숨에 무력화시켜 버릴 것 같은 파괴적인 폭탄들이 여기저기서 여전히 터지고 있다.

## 2\. 교회의 현실: 밖의 적보다 두려운 안의 자폭

지금의 시대를 바라보면, 교회의 적은 단지 교회를 외면하고 냉소하는 세상만이 아닌 듯하다. 오히려 더 두려운 것은 스스로 자폭하고 있는 교회들이다. 예전에는 어떤 교회의 목사에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경악하고 한숨을 쉬곤 했는데, 이제는 자포자기한 듯 그리 놀라워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세상 어느 한편에서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가도 무감각하게 지나쳐 버리는 것처럼, 교회 안의 비극적 사건들 역시 어느새 익숙한 뉴스처럼 소비되고 있다.

최근 한 교회의 담임목사가 함께 시무하는 교역자에게 조폭도 놀랄 만큼의 욕설을 퍼붓는 음성파일이 세상에 공개된 일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일이 드러나면서 세상 속 교회의 이미지는 더욱 추락했고, 건강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애써 온 많은 목회자들의 수고와 노력은 또 한 번 힘을 잃고 말았다. 같은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인격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일이다. 진리를 빙자한 힘의 남용, 교회를 하나님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와 승리의 도구처럼 여기는 태도, 다시 말해 승리주의가 낳은 열매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대학 동기 모임을 가졌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들 가운데는 근거 없는 가십도 있지만, 목회 현장 안에 갇혀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실제 이야기들도 많다. 알고 싶지도 않고 듣고 싶지도 않지만, 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한 여자 목사가 젊은 기혼 부교역자를 마음에 두고 그의 아내와 이혼하게 만든 후 자신과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교인들에게는 한 사람 전도할 때마다 100만 원을 지급하고, 전도받은 사람에게도 100만 원을 주면서 전도를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방식은 결코 복음일 수 없다. 복음이 우선이 아니라 돈이 복음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서 경고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면 복음은 말의 지혜로도, 세상의 수단으로도 전해져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에 이끌려 열심을 내게 되고, 결국 그 구조는 또 다른 왜곡과 착취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모습 역시 승리주의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다.

## 3\. 구조적 진단: 한국교회 승리주의의 뿌리

한국교회는 1970년대 경제 부흥의 흐름과 맞물리며 교회의 경제력과 성장의 맛을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교회성장을 부흥의 본질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서구 크리스텐덤의 DNA, 곧 신학의 부재, 교권주의, 반지성주의적 신앙 형태가 이식되었고, 여기에 한국적 상황화라는 이름 아래 무속신앙과 성공주의가 뒤섞이면서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점점 흐려져 갔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복음을 선포해야 했지만, 어느 순간 세상의 욕망을 더욱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조를 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집단 신앙지성과 집단 영성주의에 함몰되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도전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Nominal Christian, 곧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어느새 표준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스탠리 하우어스가 『교회됨』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확신에서 도출되는 사회윤리를 재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거룩함과 책임, 진리와 사랑, 공교회성과 사회적 책무를 잃어버린 채, 세상보다 더 저급한 윤리의 열매를 맺고 있지 않은가. 목회의 현장에서, 교인들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것이 지금 겪고 있는 교회의 현실이다.

## 4\. 목회자로서의 고백: 분노와 은둔 사이에서

나 역시 목사이기에, 위와 같은 목사들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정말 목회를 떠나고 싶을 만큼 좌절스러울 때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동료 목회자들 가운데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게는 여전히 이 상황을 바꿀 만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한국교회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그 문제를 붙들고 오래 고민해 왔고, 학위까지 받을 정도로 씨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무겁고 답답하다.

세속적 교회로 흘러가고 싶지 않아 은둔에 가까운 시간을 지내 왔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승리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눈앞에서 자폭하는 교회들의 현실을 볼 때마다 너무도 큰 상처를 입는다. 그것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분명 내게 폭력처럼 다가왔다. 한국교회를 향한 고통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순간 내게 이런 교회들과 목사들은 적이 되었다. 나는 분노했고, 그런 문제들에 대해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으며, 귀를 막고 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목회적 영역은 점점 생존의 차원으로만 축소되었고, 어떤 소통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활동의 반경 역시 갈수록 좁아졌다. 선한 영향력을 위해 함께 모이려는 마음보다 경계하는 마음이 더 커졌고,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이슈와 주변 목회자들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 좁은 시각과 지식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이 내 안에 자라난 또 다른 열매가 되고 말았다.

교회의 승리주의를 비판하는 과정 속에서, 내 안에도 또 다른 형태의 폭력성과 독선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상처받은 많은 목회자들이, 비판의 정당함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을 품게 되는 위험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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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환점: 비폭력적 사랑의 재발견

며칠 전, 오래전에 읽었던 월터 윙크의 『예수와 비폭력 저항』이 생각나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내게 새롭게 도전이 되고 깊은 인상을 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닫혀 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한 내용이었다.

원수에게 보복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마 5:38–42)은,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비폭력으로 폭력을 이겨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그 원칙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월터 윙크는 여러 역사적 자료를 통해, 폭력적으로 대응할 때보다 비폭력적으로 대응할 때 희생자의 수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오히려 더 효과적인 저항이 가능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내게 더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원수를 이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그 원수조차도 정의로운 사람이 될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 둔 채 대항하는 정의로운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부당한 대우에 대해 사랑으로 대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이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법론 그 자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단지 한 권의 책을 다시 읽은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분노와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교회의 잘못을 분명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어느새 사람을 향한 가능성 자체를 닫아 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진리를 말하고자 했지만, 사랑 없이 진리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바울이 에베소서 4장 15절에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그 순서는 분명했다. 진리와 사랑은 분리될 수 없으며, 사랑이 진리의 방식이어야 한다.

## 6\. 사랑의 재정의: 값싼 관용이 아닌 십자가의 저항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문제를 덮어 주는 값싼 관용이나, 잘못을 눈감아 주는 무기력이 아니다. 사랑은 폭탄을 터뜨리는 자들 앞에서 침묵하는 비겁함도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더 깊은 차원의 저항이며, 더 거룩한 방식의 대항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상대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그를 변화의 가능성 앞으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폭력은 약한 자의 수세적 태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통과한 자만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영적 저항일 수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을 때,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폭력의 논리 자체를 전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승리였다. 예수께서 원수를 향해 보여 주신 길도 바로 그러한 길이었다. 우리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의 문제 앞에서 취해야 할 방식도 이 십자가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 7\. 함께 깨어 있는 길: 연대와 회개의 공동체

이 시대에 건강하고 바른 교회를 위해 함께 모여 애쓰는 일은 분명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거나 즐거운 길만은 아니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폭탄을 터뜨리는 교회들에 영적으로 맞서야 하고, 동시에 우리 안에도 언제든 그러한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교회의 죄를 비판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 역시 늘 회개와 성찰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교회의 적을 말하면서, 내 안의 적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 7:5)라고 말씀하신 것은, 비판의 자격이 아니라 비판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바깥을 향한 비판은 반드시 안을 향한 성찰과 동행해야 한다.

ACT NOW를 거듭하며 함께 연합하고 연대해 가는 일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포스트-크리스텐덤의 시대에 누구도 홀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함께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깨어 있는 것이다. 함께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진실해지는 것이다.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회개하고 함께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교회를 향한 절망이 깊을수록, 더욱 복음의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 승리주의가 아니라 십자가의 길로,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저항으로, 냉소가 아니라 소망의 연대로 걸어가야 한다.

## 8\. 다시 기도하며: 한국교회를 향한 소망

나는 여전히 한국교회를 향한 고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기도하고 싶다.

잘못된 교회를 향해서는 분명하게 말하되, 미워함으로 닫히지 않기를 원한다. 무너진 교회를 향해서는 애통하되, 냉소로 굳어지지 않기를 원한다. 싸워야 할 때는 분명히 싸우되, 그 싸움의 방식이 그리스도를 닮아 있기를 원한다. 교회를 살리는 길은 더 큰 폭력이나 더 거친 언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혼자 걷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목회 현장에서 같은 상처를 안고, 같은 절망과 싸우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복음의 방식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 사랑만이 교회를 다시 교회 되게 할 수 있다.

글쓴이 목양교회 김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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